“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죄에 매여 살아가는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길 원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우리에게 복음이었고, 이로 인해 우리는 우리를 묶고 있던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 예수님을 주라 고백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죄를 드러내는 율법으로 정죄받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았고 성령이 이끄시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바울은 말한다. 구원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신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성자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완성되었고,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 우리에게 적용된다. 즉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일하심(교통하심)으로 하나님 자녀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자리는 여전히 어지럽다. 죄와 사망의 법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준과 시야는 연약하고 비좁아 오늘은 옳다고 외치고 내일은 틀렸다고 외친다.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다수의 의견에 휩쓸려 가치를 매기는 기반은 자꾸만 변해 오늘은 맞고 내일은 틀리기를 반복한다. 불편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주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은 소망이다. 성령님이 오시면 삶의 우선순위가 바뀐다. 그래서 바울은 이전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고백했다. 성령님과 함께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의 구원을 더 깊이 이해하고 육신의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을 따라 산다. 성령님과 함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간다.
튼튼하게 하신다 (에베소서 3장16절) 성령님은 어떤 일을 하실까? 성령님은 죄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돌보신다. 성령님의 돌보심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좌객 (坐客)의 손을 잡아 일으킨 사건은 성령님의 일하심이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의 용기 역시 성령님의 역사다. 몸이 아픈 사람, 마음이 아픈 사람, 위험에 처한 사람 모두 도움이 필요하다. 인간은 연약하기에 혼자 하지 못하는 일들을 수없이 만난다. 성령님이 일하시는 순간은 우리가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할 때다. 이런 우리를 성령님은 섬세한 손길로 강건하게 하시고 그 손길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길 원하신다.
알게 하신다 (요한복음 14장26절) ‘성령님은 어떤 일을 하실까?’의 두 번째 답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해 알려 주신다는 것이다.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때가 되었음을 아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에 대해 알려 주셨다. 이 진리의 영은 세상이 알 수 없는 분이지만, 성령이 오시면 너희와 함께하시면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예수님이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심과 그 넓음을 다 알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다며 왜 그래?”라는 말에 우리는 주눅들 때가 있다. 그런 우리에게 성령님은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며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 주고 경험하게 하신다. 마음으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할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배우고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더 깊이 배울 수 있다. 이 배움은 세상의 어떤 배움보다 즐거운 일이다.
풍성하게 하신다 (갈라디아서 5장22절-23절)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명대사가 있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이것을 신앙의 언어로 바꾸면 ‘섭리’다. 섭리 가운데 사울을 부르신 주님은 아나니아를 통해 사울의 눈을 다시 뜨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셨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고후 6:8~10, 새번역).” 사도 바울의 이 충만함과 풍성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열매를 설명하며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하게 된다(갈 5:25)고 말한다. 사도 바울이 편지 곳곳에서 말한 성도의 부요함과 충만함은 성령님이 일하심으로 가능하다. 성령님은 이 풍성함을 맛보게 하시려고 오늘도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 우리 안에서 맺게 하시려는 성령의 열매는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을 알게 하시려는 섭리다. 그분은 다 계획이 있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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